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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창조성

예전에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이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그림 잘 그리겠다’는 말이었다. 정부와 기업에서 ‘디자인’을 강조하면서부터는 그 말이 ‘창의적이겠다’로 바뀌었다. 디자이너는 남과 달라야 하고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이다. 디자인 교육은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이며, 서울시는 서울시교육청과 협업하여 2009년 초등학생의 창의 교육을 위해 디자인 교과서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의문이 생겼다. 디자인 교육의 맨 첫 줄에 창의성을 두는 것이 정말 이상적인가,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정말 남과 다른 창조성인가 하는.

지난 10월 광주 국제디자인총회에서 기조연설자 중 하나인 번 슈미트(Bernd Schmitt) 교수는 “미래에는 로봇이 디자이너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다소 극단적인 발언을 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디자이너 중 그 주장에 동의하는 이는 없어 보였고, 국제적인 디자인 행사에서 그런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가 본인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덧붙였던, 컴퓨터와 같은 비인간적인 것이 인간보다 더 창조적일 수 있으며,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기존과 다른 결과물을 무작위로 만들어내는 일은 인간이 컴퓨터를 따를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지금도 아론(Aaron), 에미(EMI)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여느 예술가 못지않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던가. 그가 말한 대로 디자이너의 본질이 창조성, 곧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있고 지금의 디자인 교육이 그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어떻게 미래의 컴퓨터가 현재 존재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대체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컴퓨터는 디자인 관계 분야에서 여러 직무를 대체해 왔고 디자이너의 역할을 변화시켰다. 미래에도 여전히 디자인이라는 업무를 디자이너가 담당할 수 있을까? 컴퓨터 없이 일할 수 없는 사회에서 기획자가 잘 프로그래밍이 된 미래의 로봇을 부리면서 내놓는 결과물과 기획자가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내놓는 결과물은 어떻게 다를까. 만약 어느 쪽도 적합하지 않으며 창의적인 기획자와 로봇 사이에 디자이너가 존재해야 한다면 그렇게까지 비용을 높이면서 기업과 단체가 이 조합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날 디자인교육 세션에 참여했던 디에고 조반니 베르무데스 아기레(Diego Giovanni Bermúdez Aguirre) 교수는 지금까지 쌓였던 나의 의문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을 만한 낱말을 제시했다. “디자이너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일하며 그 기본은 ‘이타’에 있다. 그러니 어떻게 로봇이 이를 대체할 수 있겠는가.”
디자이너는 창조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디자이너의 창조성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 이런 속성을 ‘이타적 창조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많은 디자인계 인사는 앞으로 디자이너의 역할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표현의 영역에 갇혀 있지 말고 설계, 기획의 영역으로 확장, 통합해 가야 한다고.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에게는 인문학과 인간공학이라는 소양이 요구된다.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지금의 디자인 교육은 여전히 창의성에만 매달리고 있다. 사람에 대한 이해는 창의성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이며, 가슴이 아닌 머리로 습득된다. 오늘날의 디자이너는 누구보다 사람다워야 하는 게 아닐까. 디자이너의 본질이 이타적 창조성이며 디자인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위한 것임이 분명해 지지 않는다면, 컴퓨터가 사람 대신 디자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후 몇 번이고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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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issue” 16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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