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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수화"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카페라떼,
맥도날드 등의 단어를 미국에 가서 그대로 발음하면, 현지인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바로 단어의 강세 때문이다. 한국어는 비교적 음의 높낮이가
균일하고, 단어의 낱자가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발음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영어를
배울 때 강세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외국인처럼 발음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영어 완전 정복은 멀고 먼 이야기가 된다.
여기, 영어와는 다른 언어가 하나 있다.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민망함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언어.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수화.

“언어에는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다. 단지, 권력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언어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고 보존될 가치가 있다.”
김유미 수화통역사(현 홍대 교양수화 강사)의 말이다. 다수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수화는 지금까지도 불완전한 것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시각 언어임에도 음성언어인 한국어에
가깝게 수정되도록 강요받고 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에 맞춰 수정한다는 것은 곧
해당 언어의 죽음, 나아가 그 언어를 중심으로 한 문화권의 죽음까지 내포한다.

대개, 농인(시각언어 중심의 문화를 구성한 사람들, 미국의 경우 deaf[청각장애인]와
Deaf[소수민족으로서의 농인]를 구분해서 사용함)은 몸의 불편함이 아니라, 청인(음성언어
중심의 문화를 구성한 사람들)과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고통 받는다고 한다. 다수의 집단과
다른 소통 체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불편함이 발생하는 것이다. 수화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농문화는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라는 시각이 일반화되어야만 지금처럼
한 언어가 외부의 압력으로 훼손되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리얼하게 해야 합니까?” 교양 수화 시간, 문장 시범을 본 한 학생의 질문이다.
수화의 구성 요소는 크게 수지 기호와 비수지 기호로 나눌 수 있다. 수지 기호는 손의 형태,
움직임, 위치 등으로 표현하는 말로, 다른 몸짓에 비해 식별이 쉽다. 많은 사람들이
‘수지 기호=수화’라고 오해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수지 기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비수지 기호이다. 얼굴 표정, 동작의 속도와 강약 등의 몸짓이 이에 속한다. 농인들은
이것으로 문장의 형식이나 억양, 강세 등을 표현하며 혹자는 비수지 기호를 ‘수화의 문법을
담당하는 요소이자 수화를 언어로 성립되게 하는 요소’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부 청인들은
종종 비수지적 표현(특히 얼굴 표정)을 우스꽝스럽고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한 수화로 대화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많은 청인들이 호기심으로 수화를 배우기 시작하듯, 나도 그런 마음으로 대학교 3학년 때
교양수화 강좌를 신청했다. 교회에서 배웠던 수화 율동, 아름다운 손놀림이 수화의 전부라
생각했던 그때, 첫 강의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수화는 언어이다.” 이것이 한 학기 내내
강사가 전하려 했던 핵심이었다. 편견이나 두려움 없이 진실을 받아들이면, 보다 넓은
세상을 보게 된다. 수화를 통해 나는 내 머릿속에 둘러있던 고정 관념의 울타리를 보았고,
이후 그것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사람들이 수화를 배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알아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수화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변형,
훼손되고 있다. 이에 일부 수화 통역사와 농인들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수화의 원형 보존과
올바른 수화 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홍대에 다니고 있다면, 교양 수화 수업을 꼭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짧은 시간이지만 수화 및 농인과 그 사회 전반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점차 소리가 아닌 빛으로 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시각 언어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에 만들어진 편견의 틀이 얼마나 완고한지도 함께 느끼게 될 것이다.

2008.ㅎㅇㅅㄷ.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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